기술과 문명 그리고 SNS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지배하는 세대 속에 살고 있다지만 감히 주장하건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늘 시대를 답습한다. 그래서 무언가 이해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마땅하다.

IT분야도 예외가 아닌 것이 용어와 단어 그리고 형태만 계속 바뀌고 있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경우 늘 거기서 거기다.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다르고 각 특징이 다르니 다르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무언가를 함께 떠들고 즐기기 위해서 온라인에 저장하고 공유하고의 메커니즘은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 참여, 공유, 개방 이 세 가지 키워드가 WEB 2.0의 시대와 함께 도래한 것이 아니라는 점.

지금이야 블로그가 대명사가 된지 오래지만 처음 블로그 서비스가 선보여졌을 때만 해도 블로그를 한다고 하면 “뭐? 블로그를 한다고? 블로그가 뭔데?” 라는 상대방의 반응이 심심치 않았으니 “뭐 트위터를 한다고? 미투데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연일 언론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 라는 단어를 거들먹거리니 곧 익숙해 질 테고 웹 히스토리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다음은 최근에 재밌게 읽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 한 부분이다. 읽는 순간 소셜 서비스, 스타트업에 서 있는 혹은 설 사람들 혹은 그 서비스 이용을 통해 흐름에 발맞추려고 하는 이들이 떠올라서 인용한다.

개발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토지도 있고, 실제 작업에 종사할 사람이 있어도, 거기에 필요한 기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로마인은 아직 이만한 대역사를 추진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에트루리아에서 그 기술을 도입했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려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토지, 오늘날로 보면 자본 혹은 포털? 그리고 필요한 기술은 그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술. 이 조건들을 가지고 새롭게 오픈을 준비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존재하고 이 조건이 모두 갖춰져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인 쪽은 이미 그들 나름의 기술을 녹여내 시작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다르지만 국내에 서비스를 살펴보면 SKT의 토씨, 네이버의 미투데이, 야후의 소셜펄스, 다음의 요즘, 유저스토리랩 Kooo, 최근엔 싸이월드의(SK컴즈) C로그까지. 이미 서비스를 종료한 엠엔씨소프트의 플레이톡도 빼놓을 수 없겠고.

간척 기술, 지하수로 공사에 필요한 기술, 도로포장 기술, 신전 같은 대규모 석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 등 모든 기술이 에트루리아에서 들어왔다. 기술 기도자로 에트루리아인도 들어온다 로마에는 머리를 길게 기른 에트루리아인이 갑자기 부쩍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시기에 이루어진 에트루리아 기술의 도입은 단순한 도입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로마인은 에트루리아 기술자들의 지도를 받고 일하면서, 그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이것이 나중에 세계적인 토목 기술자들을 키워내는 기초가 되었다. 타르퀴니우스가 도입한 에트루리아 기술로 변모한 로마 시가지를 보고, 원래 농경민족인 로마인은 기술력에 눈을 뜨게 되었다.

최근의 웹 트렌드는 기술력에 눈을 뜨게 된 로마인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주축으로 세계 곳곳에서 소셜 서비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프랑스에서는 hi5, netlog 등 브라질에서과 인도에서는 orkut, 중국은 renren.com본은 mixi, 모비게 타운 월드 단위로는 linkedln, meetup, google buzz, ms profile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SNS가 존재한다.

로마에 대한 에트루리아 문명의 영향은 기술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규모 토목사업에는 자재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분야를 담당하는 것도 당시의 로마인에게는 무리였던 만큼, 이것을 맡을 사람도 역시 에트루리아인밖에 없었다. 이전의 로마에는 가내공업 규모의 산업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업과 수공업이 시내 전역에서 눈에 띄게 되었다. 당연히 경제가 활발해졌다. 상공업의 활성화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되었다. 로마는 여러 측면에서 도시국가로서 균형잡힌 구조를 갖기 시작했다.

로마가 왕정일 시기 최초로 선거 운동을 한 제 5대왕 타르퀴니우스는 당시 간척사업을 통해 토지를 늘리고 공동체 사이에 교류를 활발하게하여 흥하게 했다. 타르퀴니우스가 흥하게 했던것 처럼 SNS을 모티프로한 모종의 개척 사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는 이 서비스를 이용할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 잘 이용할 사람말이다.

왜냐하면 기술과 문명의 흥망성쇠에는 언제나 사람이 그 중심에 서서 새로운 역사를 쓰기 때문이다.
SNS로는  어떤 역사를 써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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