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줄짜리 자막

지난 토요일에 방영된 시사 다큐에 내가 번역한 인터뷰가 네 줄짜리 자막이 됐다.

이 네 줄은 올 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광고를 따내고, 원고를 쓰고, 번역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은 일보다 내게 더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사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책 한 권이 이 네 줄보다 훨씬 큰 성취임이 분명한데 신기하게도 이 네 줄에게서 더 큰 뿌듯함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책 만들 때와는 달리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지 않고 능동적로 일했다. 일분도 되지 않는 시간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간 게 전부라 책 한 권을 엮어낸 것에 비하면은 아주 작은 성취지만 이번 일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꽤 괜찮고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되뇌게 했다.

이 네 줄은 올 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광고를 따내고, 원고를 쓰고, 번역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은 일보다 내게 더 큰 성취감을 안겨줬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는 책 한 권이 이 네 줄보다 훨씬 큰 성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상황을 탓하기만 하고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하면서는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일했다는 게 차이라면 아주 큰 차이. 비록 일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엄청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니 책 한 권을 엮어낸 것에 비하면은 아주 작은 성취지만 이번 일은 스스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꽤 괜찮고 의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되뇔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니 더 큰 성취를 한 게 아닌가 한다.

더 잘 되게 할 수 있었는데 자의든 타의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그때마다 나는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며 결국 에이전트의 일이니 나는 이만 됐다며 수동적인 태도로 임하지 않았는지. 주변을 탓하며 어영부영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다른 성취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환경을 탓하며 내가 수동적인 것은 내탓이 아니며 수동적으로 임하는 나에게 더 잘 할 수 있는데도 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이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나 자신을 세뇌해온 것은 아닌지. 은연중에 부정적인 내 태도를 합리화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이번 네 줄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다른 성취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긍정적인 주문을 외워보는것 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최소한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면 큰 성취는 못할 수 있어도 큰 성취감은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네 줄이 내게 큰 개인적 성취감을 안겨 주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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